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4위에 머문 카밀라 발리예바가 낙담한 표정을 짓는 장면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4위에 머문 카밀라 발리예바가 낙담한 표정을 짓는 장면

[스포츠춘추]

“세상에 절대 숨길 수 없는 게 세 가지 있어요.”

TV로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을 지켜보던 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사무총장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박 총장은 빙판 위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는 러시아 피겨스케이터 카밀라 발리예바(16)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사랑과 기침 그리고 도핑이에요. 이 세 가지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절대 숨길 수가 없어요. 발리예바가 좀 더 그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저렇게 불안한 표정으로 빙판 위에 있진 않았을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박 총장은 한국 최초 국제 도핑검사관으로 유명하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도핑관리담당관을 시작으로 해마다 국내·외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대회에 도핑 전문가로 참가했다.

세계도핑방지기구(WADA) 교육위원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아시아올림픽위원회 반도핑 위원을 맡고 있는 한국 최고의 도핑 전문가인 박 총장에게 ‘스포츠춘추’가 발리예바 사건을 물었다.

한국 최고 도핑 전문가 “발리예바,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발리예바를 응원하는 러시아 피겨팬들
발리예바를 응원하는 러시아 피겨팬들

발리예바 도핑 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선수들과 같은 생각이다. 도핑에 예외가 있어선 안 된다. 

도핑 양성이 드러났음에도, 스포츠중재법원(CAS)은 발리예바의 피겨 개인전 출전을 허용했다. ‘16세 미만’인 나이가 출전 허용의 명분이 됐다는 지적이다. 세계 스포츠계는 “이런 식이면 16세 미만 선수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도핑을 해도 된다는 뜻이냐”며 발끈했다.

도핑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다만, ‘미성년자니까 보호를 해야 한다’는 말엔 공감한다. 미성년자로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거나 주변인들이 도핑에 개입했을 수도 있다. 특히나 세계반도핑기구(WADA) 규정엔 ‘미성년자는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CAS에서도 WADA 규정과 여러 상황 등을 고려해 발리예바의 피겨 개인전 출전을 허용한 것이고. 그렇다고 ‘도핑 양성 반응이 나온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한 것’에 대한 전세계 스포츠계의 논란이 사그라든 건 아니다. 더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전문가 입장에서.

네.

이번 발리예바 도핑 스캔들을 계기로 어린 선수들에게 '도핑이 허용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히지 않도록 더욱 철저한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고 본다.

발리예바가 출전한 여자 피겨 개인전 봤나. 

봤다. 발리예바,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도핑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어떤 선수도 약물에 손을 대선 안 된다. 그런데도 약물에 손을 대려는 선수가 있다면 빙판 위에서 불안에 떨던 발리예바의 표정을 보길 바란다.

발리예바의 피겨 개인전 출전과 관련해 어떤 생각이 들었나.

철저히 WADA 규정에 따라서만 이야기한다면 미성년 선수는 처벌에 앞서 보호받아야할 대상이다. 선수 본인뿐만 아니라 선수 주변 관계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향후 소명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될 것이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최종 결론이 났을 때 당시 출전이 옳았는지 최종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본다. ‘발리예바처럼 도핑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가 계속 올림픽에 뛰는 게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대한 판단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명확하게 새로 세워질 것으로 본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사진 가운데)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사진 가운데)

피겨는 원래 도핑과는 거리가 먼 종목 아니었나.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재분석 중이다. 러시아가 지금 ‘러시아’란 국명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국가적으로 도핑 스캔들에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니지만, 향후 피겨에서 또 한번 도핑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다.

2016년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가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2017년 IOC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징계없이 조사를 끝내 버렸다. 러시아는 IOC의 사건 종료에 발맞춰 “우릴 모함하지마라”고 큰소리 쳤는데.

현재 새로운 기술로 과거 샘플들을 재검사 중이다. 이 최신 기술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약에 손을 댔던 선수들을 대거 찾아내고 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도핑 샘플도 재분석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인데.

소치 샘플을 재분석 중이라는 얘길 들었다. 정확하게 언제 결론이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발리예바는 CAS 청문회에서 “할아버지와 같은 물컵을 쓰다가 할아버지의 심장 치료제 성분이 소변 샘플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핑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발리예바의 소변 샘플에서 검출된 트리메타지딘의 농도가 다른 선수들의 샘플과 비교해 무려 200배나 높았던 것으로 안다. 여기다 다른 약도 검출됐고. 같은 물컵을 써서 200배 이상 나왔다는 건…단언할 순 없지만, 분명히 흔한 일은 아니다. 

흔한 일이 아니라면 확률적으로.

100만분의 1 정도? 아니면 그 이상?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약물에 손댔던 선수들이 최근 들어 최신 기술을 통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사무총장과의 화상 인터뷰 장면
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사무총장과의 화상 인터뷰 장면

올림픽이 끝나고 발리예바가 징계받을 가능성, 어느 정도로 보나.

도핑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200배 이상의 성분이 검출됐다. 양성이 음성으로 바뀔 확률은 매우 낮다. 본인 몸에서 나온 건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선수라면 당연히 조심해야 하고, 교육받아야 한다. 선수가 몸담은 관계기관은 철저히 도핑을 교육할 의무가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것도 러시아 선수가 도핑 룰도 모르고 대회에 출전한단 말인가. 도핑은 경기 룰이다. 룰을 어겼으니 징계를 받는 건 당연하다. 다만.

다만?

또 이야기하지만 WADA 규정상 미성년자는 보호받아야할 대상이다. 어린 선수가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었는지, 주변인에 의해서 약물에 손을 댄 것은 아닌지 명확히 가려져야 한다. 미성년인 발리예바는 보호하되, 주변인 특히 어른들, 선수 관계자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어린 선수에게 도핑해선 안 된다는 교육, 어린 선수를 지켜주지 못한 잘못 등의 책임이 크다. 발리예바처럼 어린 선수들은 주변에서 더 교육하고, 도핑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한다. 

여전히 많은 선수가 도핑을 숨길 수 있다고 믿는다. 

절대 숨길 수 없다. 당장은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 밝혀진다. 이젠 샘플을 10년 이상 보관한다. 그 보관한 샘플을 새 기술로 검사해 약물을 찾아낸다. 앞서 얘기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약물에 손댔던 선수들이 최근 들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도 다시 진행 중이다. 재차 말씀드린다. 사랑과 기침그리고 도핑은 절대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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