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외야의 새 희망 황성빈, 고승민(사진=롯데)
롯데 외야의 새 희망 황성빈, 고승민(사진=롯데)

[스포츠춘추=잠실]

“내가 처음 롯데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는 없었던 유형의 선수들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 자이언츠는 프랜차이즈 스타 손아섭과 작별했다. 두번째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손아섭은 라이벌팀 NC 다이노스와 총액 64억원 계약을 맺고 부산을 떠났다. 롯데 구단 역사상 가장 높은 타율과 가장 많은 득점, 2루타, 이대호 다음으로 많은 안타를 ‘날린’ 슈퍼스타가 사라졌다.

대스타를 잡지 않은 롯데는 내부에서 대안을 찾았다. 여러 안 가운데는 기존 외야수들의 ‘3단합체’도 있었다. 좌투수에 강한 신용수, 우투수에 강한 김재유, 사이드암에 강한 추재현을 상대 투수 유형에 따라 활용하는 방안이다. 이 아이디어는 메칸더 세 용사의 부상(김재유)과 부진(추재현, 신용수)으로 실패했다. 프랜차이즈 스타의 빈자리를 메우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5월 1군에 올라온 대졸 외야수 황성빈이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장두성처럼 대주자, 대수비 정도로 생각하고 콜업했는데 알고보니 재간둥이였다. 빠른 발과 번트 개인기를 겸비한 황성빈은 5월 타율 0.304의 좋은 활약으로 롯데 외야 한 자리를 차지했다. 

시즌 초반 출발이 좋지 않았던 고승민도 6월부터 살아났다. 6월 타율 0.455로 시작해 7월에 0.333, 8월 0.408로 뜨겁게 달아오른 고승민의 방망이는 9월에도 0.308로 식을 줄을 모른다. 고승민의 6월 이후 타율은 0.365로 100타석 이상 선수 중에 LG 문보경(0.372)에 이은 2위다.

“황성빈, 고승민은 롯데에 없었던 유형의 선수” 서튼 감독도 대만족

번트 아티스트 황성빈(사진=롯데)
번트 아티스트 황성빈(사진=롯데)

정규시즌 막바지를 향해 가는 23일 현재 황성빈+고승민 2단 합체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NC 유니폼을 입은 손아섭의 타율이 0.277인데 황성빈이 0.305, 고승민이 0.285로 더 좋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출루율도 황성빈 0.354, 고승민 0.358로 손아섭(0.344)보다 높고 장타율 역시 황성빈 0.381에 고승민 0.406으로 손아섭(0.370)을 능가한다. 타석에서 생산성을 보여주는 wOBA(가중 출루율)도 황성빈이 0.336, 고승민 0.351로 손아섭(0.332) 부럽지 않다.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도 손아섭 1.76승, 황성빈 1.47승, 고승민 1.20승으로 경기수 차이를 감안하면 차이가 크지 않은 편이다.

손아섭과 황성빈, 고승민의 기록 비교(통계=스탯티즈)
손아섭과 황성빈, 고승민의 기록 비교(통계=스탯티즈)

래리 서튼 감독도 두 외야수의 활약에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22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만난 서튼 감독은 “개인적으로 프로세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선수 개개인의 프로세스, 어린 선수들의 육성 프로세스가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황성빈과 고승민은 시즌 초반과 비교해 가장 큰 발전과 성장을 이룬 선수”라고 말했다.

서튼 감독은 “두 선수는 내가 처음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팀에 없었던 유형의 선수”라고 평가했다. 이어 황성빈에 대해 “팀에 스피드와 넘치는 운동 능력을 제공하고 있다. 부임 당시만 해도 팀에 진정한 중견수가 없었는데, 그 역할도 잘해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서튼 감독의 말대로 황성빈은 최근 롯데 야구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야구를 하는 선수다. 2000년대 이후 롯데 야구는 단순했다. 롯데의 득점은 대부분 홈런이나 볼넷, 연속안타 등 타석에서의 타격 행위에서 나왔다. 루상에서 빠른 발로 상대를 흔들고 작전으로 점수를 짜내는 장면은 롯데 경기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어이없는 주루사로 찬스를 날리고, 병살타로 주자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한 이닝에 안타 3개를 치고 1점도 못 낼 때도 많았다. 방망이가 잘 맞으면 시원하게 승리했지만, 방망이가 안 터지는 날은 힘 한번 못 써보고 경기를 내줬다. 타자들 이름값만 화려했지 실속이 없었다. 

황성빈은 내야안타와 번트안타 생산에 특화된 선수다(통계=스탯티즈)
황성빈은 내야안타와 번트안타 생산에 특화된 선수다(통계=스탯티즈)

황성빈은 다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2000년대 롯데보다는 1990년대 따발총 타선 시절 롯데 야구에 가깝다. 뛰어난 번트 기술과 빠른 발로 숱한 번트 안타와 내야안타를 만들어 낸다. 23일 기준 번트안타만 벌써 8개, 내야안타는 27개를 만들어냈다. 리그 타자 중에 내야안타 비율 1위, 내야타구 타율 1위다. 

일단 황성빈이 타석에 나오면 상대 내야수들은 바짝 긴장하게 된다. 롯데 관계자는 “상대 투수와 수비진을 짜증 나고 화나게 만드는 타입의 선수다. 우리 라인업에 한동안 이런 선수가 없지 않았나. 꼭 안타가 나오지 않더라도, 상대를 괴롭히고 긴장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번트부터 대고 뛰기 바빴던 초기 버전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이뤘다. 22일 잠실 LG전 3회초에 선보인 페이크 번트 슬래시가 좋은 예다. 무사 1, 2루 찬스에서 나온 황성빈은 희생번트 자세를 취하다 기습적으로 타격으로 전환, 2타점 3루타를 때려냈다. 당연히 번트를 대리라 예상한 LG 수비수들이 앞으로 달려나오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황성빈은 “번트 사인이 나왔지만 상대 수비 위치를 보고 슬래시로 전환했다. 평소 김평호, 나경민 코치님과 상대 수비 위치에 따라 연습한 게 도움이 됐다” “타구의 코스가 좋았고 타구 속도도 빨랐다. 1루 주자가 발 빠른 박승욱 형이라 3루만 보고 뛰었다”고 설명했다.

이제 상대 수비수들은 황성빈 타석 때 번트, 내야안타 외에 페이크 번트 슬래시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 안 그래도 거슬리는 타자였는데 더 짜증나고 신경 쓰이는 타자로 성장한 황성빈이다. 

황성빈+고승민 연봉 6천 800만원…15억원 손아섭 몸값의 4.5%

고승민은 롯데 팀 내 최고의 타구속도를 자랑한다(사진=롯데)
고승민은 롯데 팀 내 최고의 타구속도를 자랑한다(사진=롯데)

서튼 감독은 고승민에 대해서도 “우리 팀에 없었던 유형의 좌타자”라고 칭찬했다. 그는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강한 좌타자가 없었는데, 고승민이 그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며 고승민의 타격 능력에 초점을 맞췄다. 

고승민은 평균 타구속도 140km/h대로 팀 내에서 한동희와 1, 2위를 다투는 선수. 강한 손목 힘과 빠른 스윙으로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 다소 낮은 발사각도를 조정하면 미래 두 자릿수 홈런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루 시도가 많지는 않지만 스피드가 빨라 ‘기동력 야구’도 가능하다. 

물론 손아섭이라는 간판스타의 빈자리를 다른 선수로 한 번에 대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기엔 함께한 세월이 너무 길고, 팬들과 나눈 추억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기회비용. 손아섭이 그대로 남았다면 황성빈, 고승민이 올 시즌 1군에서 많은 기회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스타와 과감하게 작별한 대가로, 새로운 공간과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

황성빈은 만 25세 군필 외야수다. 고승민도 겨우 만 22세지만 일찌감치 군복무를 마쳤다. 황성빈의 올해 연봉은 3천만원, 고승민은 3천 800만원으로 최저연봉에 가깝다. 올해 연봉 15억원을 받는 손아섭 몸값의 4.5%로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두 선수가 올 시즌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이어간다면, 비용 대비 롯데가 얻는 효과는 갈수록 커질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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