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중, 호주 NBA 아카데미 거쳐 스테픈 커리의 모교 데이비슨 대학교 입학 확정

-일찌감치 고교농구 평정한 이현중 “나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들과 부딪히면서 성장하고 싶다”

-“G-리그 쇼 케이스 전까진 입학 제안 없어 걱정 많았다”

-“축구의 손흥민, 야구의 류현진처럼 농구로도 희망 전하고 싶어”

데이비슨 대학교 입학을 앞둔 이현중(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데이비슨 대학교 입학을 앞둔 이현중(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수원]

농구공을 가지고 노는 게 가장 재밌다고 말하는 청년이 있다. 7살 때부터 농구 선수를 꿈꿔온 이현중이다.

이현중은 5월 5일 한국 선수로는 네 번째(이은정·최진수·신재영)로 미국 대학농구(NCAA) 진출을 확정지었다. NBA 최고 스타 스테픈 커리의 모교인 데이비슨 대학교 입학 허가를 받았다. 4년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까지 지원받는 특급 대우까지 받는다.

이현중은 농구인 집안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1984년 LA 올림픽 여자 농구 은메달의 주역 성정아 씨다. 아버지는 하승진, 이대성 등을 키워낸 삼일상고 이윤환 감독이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이현중은 일찍부터 국내 무대를 평정했다. 삼일상고 2학년 땐 전국대회 5관왕을 이끌었고, 2016년 U-17(17세 이하) 세계선수권 대회에선 한국의 첫 8강 진출에 앞장섰다.

한국에 남았다면 순탄히 대학에 진학해 프로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현중은 도전을 선택했다. 2018년 1월 호주 캔버라 NBA 아카데미에 입학해 세계 유망주와 경쟁을 벌였다. 언어부터 시작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시스템까지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나아갔다. 1년 5개월이 지난 뒤엔 미국 대학 입학까지 해냈다.

이현중은 2016년 세계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 미국에 81-133으로 대패했다그 경기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남으면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만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로 나아갈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엠스플뉴스는 6월 17일 한국에 입국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현중을 만났다. 한 달 남짓한 휴식기에도 체육관에서 땀을 아끼지 않는 청년 이현중의 얘기를 들어보자.

한국인 네 번째 NCAA 진출 이룬 이현중 “나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들과 매일 경쟁하고 싶었다”

호주 NBA 아카데미에서 기량을 갈고닦은 이현중(사진 오른쪽)(사진=NBA 아카데미)
호주 NBA 아카데미에서 기량을 갈고닦은 이현중(사진 오른쪽)(사진=NBA 아카데미)

한국에선 네 번째로 NCAA 도전을 확정했습니다.

처음 호주 NBA 아카데미에 도전했을 땐 큰 욕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NCAA나 NBA 진출보단 농구 선수로 한 단계 성장하자는 마음가짐이었어요. 농구도 쉽지 않았지만, 학업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야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죠. 하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거 같아서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미국 진출을 염두하고 호주 NBA 아카데미에 도전한 게 아니었습니까.

피부색이 다른 선수들과 부딪히면서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미국 대학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선진 농구를 경험하면서 영어까지 배우자는 생각이었죠. 마음을 비우고 주어진 상황에 집중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거 같습니다(웃음).

호주 NBA 아카데미 생활이 쉽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처음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왔지만, 현지에서 쓰는 거랑은 완전히 달랐죠. 의사소통이 안 되니 답답했어요. 첫 3개월은 농구보다 공부에 더 집중했습니다. 코트 안팎에서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고요. 그러면서 호주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죠.

NBA 진출 가능성이 있는 선수만이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선수들 실력이 상상 이상입니다(웃음). 키 크고 탄력 좋은 흑인 선수가 넘쳐나요. 부딪히면 날아갈 거 같은 몸 좋은 백인 선수도 수두룩하죠. 한국에서 뛸 때처럼 혼자서 모든 걸 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이 선수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장점 하나는 무조건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죠.

데이비슨 대학에선 이현중의 슛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호주 NBA 아카데미에 가게 된 것도 슛 때문이었습니다. 2017년 8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퍼시픽 5개국 대회에 참가했는데 던지는 족족 림을 갈랐어요. 제가 흑인선수보다 높이 점프를 뛰고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내긴 어렵죠. 백인선수들과의 골밑 싸움에서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슛에서만큼은 그들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당시 대회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호주 NBA 아카데미에서 뛰게 된 거죠?

호주 NBA 아카데미 직원 가운데 한국분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 아카데미에서 농구 배워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죠. 이후 고민을 좀 했어요. 고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학교를 떠나는 게 맞는 걸까 수백 번 생각했습니다. 며칠 고민을 거듭하다가 농구선수로 발전을 위해선 가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죠.

벌서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흘러 호주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간 거 같습니다(웃음). 호주에선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아침부터 오후 1~3시까진 학교 수업을 들었죠. 4시 이후부터 하루 두 시간씩 팀 훈련을 진행했고요. 일정이 매번 같았던 건 아니지만 이와 비슷하게 1년 6개월을 보냈습니다. 팀 훈련 마치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거나 과제를 하는 게 일상이었죠.

학업을 위해 유학 갔다고 해도 믿을 거 같습니다(웃음).

그나마 다행인 게 제가 중학교 때까진 공부를 놓지 않았어요(웃음). 처음엔 수업을 따라가는 게 어려웠지만 금세 적응이 되더라고요. 특히나 어릴 적부터 계산하는 걸 좋아해서 수학을 잘했습니다. 호주에서도 A를 받은 과목이었죠.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준까지 영어 실력도 끌어올렸고요. 호주 생활은 120% 만족입니다.

팀 훈련이 하루 2시간이었습니다. 훈련량이 적은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요.

2시간 안에 모든 걸 쏟아냅니다. 더 운동할 수 없게끔 훈련을 진행해요. 미국 진출을 꿈꾸는 세계 각지의 선수가 모이다 보니까 경쟁도 치열하죠. 평소엔 사이좋은 친구지만, 훈련할 땐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훈련을 마치고 개인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거나 슈팅 연습을 하는 날도 많았죠. 확실한 건 훈련 시간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농구가 좋은 이유? 나도 잘 모르겠다"

후배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이현중(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후배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이현중(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농구인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농구선수의 꿈을 꾸기 시작한 시점이 남들보다 빨랐을 거 같아요.

7살 때부터 농구공이 가장 가까운 친구였죠. 지금도 그렇지만 농구공을 가지고 노는 게 재밌어요. 누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부에 들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누나까지 농구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구선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죠. 어릴 때 축구도 많이 했었는데 농구가 더 재밌고 좋더라고요(웃음).

정식 농구부에서 들어간 건 언제였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물어봤어요. ‘(이)현중아, 농구가 좋으면 제대로 한 번 해볼래?’라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농구공 가지고 노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던 소년이었어요. ‘훌륭한 농구선수가 돼야겠다’보단 그냥 농구가 좋았었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농구가 왜 좋습니까.

그냥 좋아요. 일찍부터 농구공을 가지고 노는 게 습관이었습니다. 혼자 학교 운동장에서 슛을 던지고 드리블 연습하는 게 재밌었죠.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농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아니에요. 운명인 거 같습니다(웃음).

7살 때부터 농구공을 가지고 놀았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턴 정식 농구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기본기가 아주 탄탄할 거 같아요.

기본기만큼은 남들보다 자신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턴 안희욱 스킬 트레이너에게 드리블을 배웠어요. 평소에 배우기 어려웠던 화려한 드리블을 접하면서 또 다른 재미가 붙었죠.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게 응용하는 시간도 흥미로웠고요. 드리블에 힘이 붙으면서 외곽에서 플레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던 거 같습니다.

탄탄한 기본기 덕분인지 키(201cm)와 관계없이 슈팅 가드와 스몰 포워드로 쭉 커왔습니다.

슈팅 가드로 오랜 시간 뛰었죠. 중학교 땐 팀에서 키가 가장 컸어요. 수비할 땐 어쩔 수 없이 센터를 봤는데, 감독께서 공격할 때만큼은 자유롭게 플레이 할 수 있게 도와주셨죠. 팀 상황에 따라서 포인트 가드를 볼 때도 있었고요. 많은 지도자분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슛의 강점을 살리면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G-리그 쇼 케이스 이전까진 입학 제안이 없어서 걱정이 많았다”

모교에서 연습 경기를 뛰고 있는 이현중(사진 오른쪽)(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모교에서 연습 경기를 뛰고 있는 이현중(사진 오른쪽)(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KBL에 도전했으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하지만, 쉬운 길을 마다하고 어려운 도전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고등학교 2학년(2017년)에 삼일상고를 전국 대회 5관왕으로 이끌었습니다. 특급 유망주로 농구계의 주목을 받은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2016년 U-17 세계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 미국에 52점 차로 대패한 게 큰 영향을 끼쳤죠. 국내에서 아무리 잘해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크게 느꼈어요.

국제대회에서 만난 상대는 기존에 만나던 선수들과 크게 달랐습니까.

코트에 들어설 때부터 솔직히 무서웠어요. 몸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데다가 운동신경까지 남달랐죠.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드리블, 슛, 조직력 등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어요. 슛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었지만, 미국전에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 ‘쟤들처럼 농구를 해야겠다’가 아니라 ‘쟤네랑 격차를 줄이려면 끊임없이 부딪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후 호주 NBA 아카데미에서 기량을 갈고닦으면서 NCAA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본인이 말한 대로 미국 선수들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는 과정에 있어요.

아직 멀었습니다.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힘을 보완해야 해요. 웨이트 트레이닝에 더 신경 써야죠. 장점인 3점슛과 달리 가끔 불안한 자세를 보이는 점프슛도 보완해야 하고요.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씩 고쳐나갈 계획입니다.

호주 NBA 아카데미에선 이현중처럼 NCAA로 진출하는 선수가 다수인가요.

실력은 뛰어난데 성적이 따라주지 않아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유명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서 진학을 못 하는 경우가 있죠. 그런 선수들은 바로 프로에 진출해요. NBA로 바로 가진 못하더라도 호주나 유럽 프로리그에 도전하는 친구들이 있죠. NCAA와 프로로 나아가는 비율이 6:4 정도 되는 거 같아요.

미국 대학 진학을 위해선 명확한 성적 기준이 있습니까.

SAT(미국 수학능력시험)를 치러서 1,600점 만점에 1,000점 이상은 받아야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처음 본 SAT에선 920점을 받았어요. 올해 3월에 다시 시험에 응시해 1,000점(1,030점)을 넘겼죠. 돌아보면 코트에서 땀 흘린 시간보다 책과 씨름한 때가 더 많은 거 같아요(웃음).

농구 실력은 물론 성적까지 되는 까닭에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데이비슨 대학을 포함해 조지워싱턴, 조지타운, 버지니아 대학교 등 20곳에서 제게 관심을 보였어요. 사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입학을 제안한 대학이 없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죠.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지난해 12월 말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G-리그 쇼 케이스에 참석했어요. 거기서 좋은 경기력을 보인 게 반전의 계기가 됐죠. G-리그 쇼 케이스를 마치니까 여러 군데서 정식 제안이 오더라고요. 속으로 ‘아, 천만다행이다’ 싶었죠(웃음).

G-리그 쇼 케이스는 프로 선수들이 뛰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KBL 각 구단이 외국인 선수 선발을 위해 꼭 참가하는 무대거든요.

우린 좀 달랐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다른 NBA 아카데미 팀과 경기를 했어요. G-리그 선수들을 만나 프로 생활에 관해 물어보기도 했죠.

G-리그 쇼 케이스가 미국에서 처음 뛰는 경기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NBA 아카데미에 속한 선수들이 다 똑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선수들이 평소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개인플레이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서 차분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팀플레이를 하려고 했던 게 좋은 점수를 받은 거 같아요. 색다른 경험이다 보니까 재밌었죠.

그때 두각을 나타내서 데이비슨 대학교 입학을 확정 짓게 됐습니다. 팀플레이를 하려고 했던 것 외에 좋은 점수로 이어진 게 있을까요.

기회가 오면 득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슈팅력. 오펜스 리바운드에 꾸준히 가담하고 악착같은 수비력을 보여준 게 좋은 점수로 이어진 거 같아요. 가장 존경하는 선수인 클레이 탐슨(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처럼 볼이 없을 때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죠.

일찍부터 스킬 트레이닝을 받은 이현중입니다. 본인의 능력을 더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나요.

팀에서 드리블이 장기인 선수가 많았어요(웃음). 동료를 살려주려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 역할을 맡으면 감독, 코치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앞으로도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최대한 간결한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개인보다는 팀을 우선하고, 기회가 오면 승리를 선물할 수 있는 그런 선수죠.

호주 NBA 아카데미에서 기량을 갈고닦고 미국 무대를 경험한 1년 6개월간 큰 성장을 이루었을 거 같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힘을 보완해야 해요. 웨이트 트레이닝에 더 신경 써야죠. 장점인 3점슛과 달리 가끔 불안한 자세를 보이는 점프슛도 보완해야 하고요.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씩 고쳐나갈 계획입니다.

쉬운 길을 마다한 이유? “농구계의 손흥민, 류현진이 되고 싶다”

미국 도전을 앞둔 이현중(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미국 도전을 앞둔 이현중(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이제 진짜 미국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호주와는 많은 게 다를 거 같습니다. 솔직히 걱정도 돼요. 농구도 문제지만, 학업은 따라갈 수 있을까 싶죠(웃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농구 외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니까 재미있게 도전해보겠습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는 거 같아요.

한국에 6월 17일에 입국했습니다. 미국엔 언제쯤 건너갈 생각입니까.

7월 중순에 미국으로 넘어가서 9월 새 학기를 준비할 생각입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엔 삼일상고에 나와서 연습게임 뛰고 웨이트 트레이닝하면서 보낼 계획이고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만큼 농구에만 집중해야죠(웃음).

한국에선 미국 농구에 도전했던 선수가 워낙 적은 까닭에 부담이 클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호주 NBA 아카데미에 처음 도전했던 마음가짐으로 나아갈 생각입니다. ‘NBA 선수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 나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과 매일 몸을 부딪치면서 성장하는 게 중요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생각입니다. 4년간 후회 없이 도전해볼게요.

10년 뒤 이현중은 어떤 사람을 꿈꿉니까.

농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 친구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어요. 동양 선수도 미국 무대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국인이 NBA에서 ‘못 뛴다’는 법은 없잖아요. 축구나 야구엔 손흥민, 류현진이란 세계적인 스타가 있습니다. 부러운 마음이 크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약속은 못 하지만, 최소한 부딪혀볼 수 있다는 건 보여주겠습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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